캘리그라피

마실버스(강릉시공영마을버스)

CHUNBARAM 2023. 5. 8. 18:27

*마실가는 길, 류지남

마실가는 길은 동지 섣달 밤마실이라야 제격이다. 흙처럼 사는 사람들, 지푸라기 같이 여린 마음들, 실없이 둥실둥실 이웃집에 정붙이러 가는 길이다. 배고프고 착한 사람들이 이럭저럭끼니 때우고 마실 나온 별들과 둥글둥글한 얼굴들 빙둘러앉아 하하호호 깔깔거리며이야기꽃피워내는 길이다. 봄바람일렁이는 풋가시내들끼리 할머니들은 또 할머니끼리라 희미한 등잔불 아래 화록불끼고 아무렇게나 앉아 별 시덥잖은 얘기에도 일부러 배꼽잡고 나자빠지며 에구 저런 쯧쯕 워쩐다, 추임새 넣어가며 졸다보면 시름도 설움도 희미한 굴뚝연기처럼 흩어져 가느니 쟁반 같은 달 떡하니 걸리는 정월 대보름날 다가와서 윷판신명나게 놀거나 먹기 내기 화투 장 돌리다보면 겨울 밤이란 언제나 토끼꼬리 처럼 턱없이 짧기만 한데 아쉬운 발길, 휘영청 밝은 달빛 호위 받으며 돌아와 서러운 살 붙이들 곁에 시린 몸 살그머니 뉘고 나면 생의 하늘엔 모락모락 샛별 다시 돋아나기도 하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