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68년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
철모르던시절 부모님을 따라 절에 다녔다. 때론 강제로 끌려가곤 했고, 때론 어머님의 보호자?로 가기도 했다. 음력 정월이 오면 절에 가는 것은 절대적인 일이였다. 한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기 때문이다. 울 엄니는 부처님에게 시주하는 것을 눈꼽만큼도 아까워하지 않는 신자였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서 라도 공양을 한다. 그것이 위안이고 평안이였다. 난 한편으론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엔.....
세월이 흐르고 내가 성인이 된 후 누가 날 보고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자연스레 불교라고 말한다. 엄니처럼 열심히 다닌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내가 보고 느낀 종교는 불교뿐이다. 훗날 스스로 절에 가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사찰에서 느끼는 묘한 안정감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날 길상사에 간적이 있다. '침묵의 방'을 들렀는데........방에 있는 짧은 시간동안 묵언에서 오는 평안함, 침묵에서 오는 고요함이 함께 몰려왔다. 누가 종교를 물어보면 이젠 자신있게 불교라고 한다.
길상사에 다녀온 후 법정 스님을 알게 되었다. 그분이 곧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도피처가 될 줄이야... 법정 스님이 쓴 모든 책들을 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불교는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올해도 오대산 월정사를 수차례다녀왔다. 거긴엔 숲이 있다. 그리고 그 숲속에 태초부터 원래 있던 것 처럼 절이 있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독경소리, 차향, 자연스럽게 핀 꽃, 명상길, 한적함, 고요함, 평온함, 맑은공기, 피톤치드, 정신을 맑게하는 법구경,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 언제나 반겨주는 9층석탑, 범종소리, 동안거, 겨울설원, 전나무, 소나무, 금강교....내가 가는 이유들이다.
그리고 오대산을 가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학창시절의 그리움이다. 당시에는 환경보존, 자연보호...등등 이런 말이 요즘처럼 법적 제재를 받거나 그런 것이 없었다. 오대산 산장(지금은 폐쇄)뜰에서 캠프파이어를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산장측에서 그런것을 준비해주고 돈을 받았다. MT는 가을 밤 기타소리와 함께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촛불, 밤배, 아침이슬, 모닥불.........그야말로 당시의 포크송들을 부르면 별이 쏟아질 것만 같은 오대산의 가을 밤을 친구들과 함께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눈 덮힌 전나무 숲길은 숨을 멎게 한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냥 걷기만 해도 명상이 된다. 고요함속에서도 혹한의 얼음장 밑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늘높이 뻗은 전나무 사이사이로 겨울바람 소리가 살짝 스쳐온다. 이런 소리들이 숲의 고요함을 더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월정사의 풍경소리가 고요함을 알리듯.......
월정사 경내의 난다나, 청류다원에서 전통차 한잔으로 오대산 마실을 마무리 한다. 매년 금강교를 33번 건너는 것을 목표로 다음 날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