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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설악
CHUNBARAM
2025. 2. 11. 09:23
남설악의 겨울은 고요하다. 눈 덮인 주전골을 따라 트레킹을 하노라면, 얼음장 밑으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적막을 깨운다. 아이젠을 단단히 조여 매고 독주암을 지나 선녀탕에 다다르면, 얼어붙은 폭포가 겨울바람에 부서져 작은 얼음 조각이 된다. 기암괴석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매섭지만, 나목들이 흔들리는 소리는 오히려 쓸쓸한 위로처럼 들린다. 눈 내리는 용소폭포 앞에 서면, 세상은 오직 흰빛과 적막뿐이다. 한적한 길 위에 남은 발자국들이 점점 사라져 갈 때, 나는 이곳이 겨울의 품속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젊은 날, 우리는 대청봉을 오르기 위해 오색 베이스캠프에 모였다. 텐트를 치고 석유버너 위에 통조림과 카레를 올려 끓이며 허기를 달랬다. 산속의 밤공기가 차가웠지만,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다 보면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밤하늘엔 쏟아질 듯한 별들이 가득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저마다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 아래에서 우리는 한없이 젊었고, 한없이 자유로웠다.



이튿날 새벽, 어둠을 뚫고 대청봉을 향해 걸었다. 숨이 차고 다리는 무거웠지만, 정상에서 맞이한 일출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둘 빛났다. 그 순간이, 우리 젊음의 한 장면이 되었다.



